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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날.

알 수 없는 사용자 2014. 3. 12. 20:59










제일 친한 친구가 외과인게 좀 불편할때는,

저녁 약속을 둘이 잡았는데 그 친구가 수술을 한번 시작하면 사실 언제 끝날지 알수가 없는거다.

아직 자기가 집도를 하는건 아니지만 레지인 주제에 혼자 '나 저녁 약속 있으니 가요!'하고 수술실을 떠날 수는 없는 일이고

우리는 여러명이 만나기 보다는 둘이 자주 만나기에 특히

그렇게 잘못 잡으면 항상 일을 비슷한 정해진 시각에 끝나는 줄곧 기다려야 할때가 있다.

그것도, 확실히 삼십분, 한시간 이렇게 정해진 게 아니니 기다리는 건 더더욱 고역.

나는 기다리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도 요즘에는 시간이 널널하니 마음도 편한 편이지만, 예전 몇년간 전문의 시험 공부할때는 모든 '공부하지 못하는 시간'이 죽도록 아까운거같았고, 그걸 누구를 기다리는 거에 쓴다는건 정말 짜증을 확 일으켰던 (뭐 그렇다고 내가 모든 남는 시간을 쥐어짜 공부를 했느냐, 그것도 결코 아니다 - 그냥, 시간은 나의 것임으로 누군가 다른 사람때문에 버려진다는 생각에 화가 났던...) 적이 있다.

그렇게 시간 많은 요즘의 나, 딱히 걱정할 일은 없고, 게다가 내 소중에 아이패드 라던가 인터넷이라던가 책 이런게 있으면 충분히 나는 혼자 카페에 앉아 열심히 그걸 파며 시간을 죽일 수 있고, 아니 그걸 솔직히 즐기기도 하는데,

문제는 그 기다린 후 친구를 결국 보게 되면 내 표정 관리가 안 되는것이다.

얼굴이 굳어있는걸 나도 느끼는데, 그게 쉽게 가짜로 펴지지 않는다 잘.

원래 감정에 너무 솔직한 얼굴을 가졌기에...

그리고 좀 그 쪽에서 미안해 하면 내 기분도 사그러들텐데, 그녀는 또 그런 스타일은 아닌...

뻔뻔한건 아니고, 그냥 미안해 하질 않는 성격이다 그냥 딱히.

여튼, 오늘도 비슷한 시나리오.

오랜만에 자기 선배 수술 도우미로 알바 뛰러 내 일하는 곳 근처로 온다면서, 저녁을 먹자고 먼저 말한건 걔였다.

대충 저녁 이라고 말했다가, 약 5시반에 '야 지금 더블 마스텍토미/ 센티넬 노드 시작 해서 아마 2시간 후에 봐야 할거같애, 너무 늦는 거 같으면 괜찮으니까 집에 가고 싶음 가던가, 연락해' 라는 문자가 왔다.

난 일이 좀 늦어지고 있어서, 그래 시간 좀 두고 보자 생각했다.

결국 만나기로 한 곳에 7시반쯤 도착, 아무 연락이 없길래 수술이 길어지는 군 생각하고 카페에서 여러 내 매일의 루틴 웹서핑을 하고, 메일, 페북, 트위터 등등 다 체크하고, 소설도 조금 읽고, 그러니 해가 서서히 지고 배도 꽤나 출출해지고 있었다.

오늘은 고기를 구워먹으려고 했었는데...

조금은 오랜만에 와 보는 그 한인타운에 새로 생긴 만두집이 있길래 그거나 사들고 집에 가야겠다 하고 맘 먹었다.

한시간 이상 누구를 기다리는것, 날도 늦어지는데, 바보같았다.

(사실 옆에서 부동산 돌아가는 얘기에 대해 거덜먹거리며 시끄럽게 얘기하고 있는 사람들, 눈 앞에 펼쳐진 담배 뽁뽁 피며 농까는 사람들이 슬슬 내 신경을 거슬리고도 있었다)

이렇게 내가 먼저 가는게 아마 서로의 비위도 덜 상하는것같고 말이다.

그녀에게 '야 너 수술 심각해지나 보네? 늦어지니 먼저 갈께'라고 문자를 때리고,

고기 왕만두를 샀다.

기차가 연착되 집에 좀 늦게 도착했지만, 그래도 만두는 아직 따뜻했다.

고기는 못구워 먹었으나, 따뜻한 왕만두는 먹었으니 아 날의 보람은 있었도다...

그녀는 10시가 넘어 문자가 왔다, 그제서야 끝났다고, 미안하다고, 내일 지가 점심 사겠다고.

훗.